Text in Video games

세 개의 비디오 게임과 텍스트 Text in Videogames: To the moon, Little inferno, Unmanned

9 January 2013 / Seoul
published in 문화다 webzine

비디오 게임에서 텍스트, 즉 문자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은 그래픽 이미지, 영상, 사운드 등과 함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요소이다. 비디오 게임이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의 표현처럼 하나의 유려한 “체험 모델”을 만들어낼 때, 텍스트로 표현되는 요소는 종종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군더더기 혹은 스토리 진행 상의 사족과 같이 취급되곤 한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에서 텍스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디지털 공간 속에 사유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텍스트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2012년에 인상적이었던 세 개의 인디 게임, ‘투 더 문(To the moon),’ ‘리틀 인페르노(Little inferno),’ ‘언맨드(Unmanned)’는 비디오 게임의 공간에서 텍스트가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보여주었다. 텍스트는 게임 세계 내에서 스토리의 진행을 이끌 뿐만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 하는 행위를 지시하면서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유도했다.

*위의 순서대로 본문의 문단마다 각 게임의 스토리와 게임플레이에 대한 스포일이 있다. 이 글을 게임 플레이 전에 읽는다면 고유한 플레이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플레이 시간은 각자 다르겠지만, 참고로 ‘투 더 문’은 4시간, ‘리틀 인페르노’는 4시간 반, ‘언맨드’는 1시간 정도 플레이 했다)

alt To the moon

프리버드 게임즈(Freebird Games)의 '투 더 문(To the moon)'은 지그문트 사무소에서 파견된 로잘린과 와츠 박스가 의뢰인인 조니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달로 가고 싶다는 조니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로잘린과 와츠는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과거를 조작하려고 한다. 플레이어는 함께 기억의 공간을 탐색하면서, 언제부터 조니가 달로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좌절되었거나 잊혀져 왔는지, 왜 삶을 마감하는 시점에 그 꿈을 다시 이루고자 의뢰를 했는지 밝혀낸다. 우여곡절 끝에 로잘린과 와츠는 과거의 조니에게 달로 가고자 하는 꿈을 상기시키고 그의 의지를 자극시켜 기억을 바꾸는데 성공한다. 조니는 그가 보고자 했었던 장면을 목격하며 죽음을 맞는다.
기억의 공간들을 이동하면서, 각각의 상황에 어떤 행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가 플레이어에게 제시된다. 선택에 따라 이야기 전개나 결말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선택지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선택지는 선택하는 행위를 반복하게 한다는 점에서 게임 플레이의 경험에 의미 있게 작용한다. 첩첩이 쌓여가는 그 선택의 행위들은 이야기가 깊어짐에 따라 여운을 남기면서, 만약 내가 그때 다른 답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선택지를 통해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투 더 문’이 이야기하는 바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야기의 중요한 갈림길로 되돌아가 선택하지 않았던 혹은 포기했던 길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의 고유한 특성 중의 하나이다. 게임 플레이에서 두 번째 경험은 첫 번째 경험과 동등한 의미가 있다.
‘투 더 문’은 스토리 진행상 플레이어의 개입이 적은 대신, 3인칭 시점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의 대화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와츠의 실없는 농담과 이를 맞받아치는 로잘린의 대사는 완벽한 콤비를 이루며 읽는 재미를 준다. 그들의 만담은 마지막까지 계속되는데, 그때쯤 되면 두 캐릭터를 다시 보게 된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에게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경험하도록 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허구를 시뮬레이션해주는 두 캐릭터는 허구를 현실처럼 무겁게 여긴다. 허상을 또 다른 실재라 믿고 생의 농담을 던질 수 있는 단단한 존재들이다.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지만 정말 그럴까? 조니는 소망을 이루고 지구를 떠났다.

alt Little inferno

투모로우 코퍼레이션(Tomorrow Corporation)의 '리틀 인페르노(Little inferno)'는 리틀 인페르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공한 벽난로를 구매해줘서 고맙다는 미스 낸시의 편지로 시작된다. 미스 낸시는 이 놀이에 목표도 순위도 실패도 없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그냥 멋진 불꽃을 만들면서 즐기라고 전한다. 그리고 슬쩍 덧붙인다. 유희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플레이어의 눈 앞에는 작은 벽난로와 불을 지를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판타스틱한 아이템들이 있다. 아이템을 태워버리면 돈이 남고 그 돈으로 또 다른 아이템을 사서 태울 수 있다. 이 단순한 놀이는 무척 매력적인데, 다양한 아이템들을 늘어놓고 함께 태우면 예상치 못한 효과들도 볼 수 있다. 특정한 콤보를 완성해서 효과를 즐기느라 물건을 정신 없이 사다 보면 제한된 개수를 넘기고 "Sorry, I got too excited" 라는 버튼을 멋쩍게 누르게 된다.
그렇게 불장난에 열중하고 있는 나에게 한 소녀가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로 인해 내가 사실 어떤 피치 못할 상황에 처해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소녀와 나는 벽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찬 바람이 밀려들어오는 굴뚝 밑에서 태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태워 온기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환상적인 장난감들 앞에서 군더더기 같은 상황설명일 뿐이다. 소녀의 편지가 게임 플레이에 유용한 정보대신 시답잖은 내용들로 반복되면 플레이를 방해하는 요소로 인지하게 되고, 점점 대충 읽고 태워버리게 된다. 자신이 여기 있다며 갑자기 소녀가 벽을 두드릴 때는 섬찟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의 생사보다 불놀이에 집중해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불안감은 들어맞고, 소녀는 불놀이로 자신의 집을 태워버린 후 사라진다.
가끔씩 날씨 속보를 담은 편지도 벽난로 앞으로 도착한다. 소식에 의하면 바깥 세상은 끊임없이 내리는 눈에 덮여 얼어붙고 있다. 나 역시 불장난 끝에 집을 홀랑 태워먹은 후 거리로 나섰을 때, 이제껏 플레이 해온 소년 캐릭터의 모습을 3인칭 시점으로 보게 된다. 편지를 배달해준 우체부의 모습도, 얼어버린 도시에 선 희망 없는 사람들도. 이것은 놀랄만한 반전은 아니다. 바깥 세계로부터 왔던 편지들 속에 단서는 충분했다. 이 불장난은 바깥 세계로부터 도달하는 소식을 태우면서 지속되는 놀이였다. 또한 나의 모든 것을 소진해야 현실로 나올 수 있는 놀이이기도 했다. 엔딩을 본 플레이어라면 ‘리틀 인페르노’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것이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소년이 탑승한 현실이 다시 환상적인 유희의 세계로 가는 견인차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alt Unmanned

몰레인더스트리아(Molleindustria)는 특정한 사회적 상황을 게임의 시스템으로 구현하여, 게임 플레이를 통해 상황의 이면에 깔려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규칙에 기반한 재현과 상호작용을 통해 설득의 기술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창하는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설득적 게임(persuasive games)에 가장 좋은 예시이기도 하다. 몰레인더스트리아의 2012년 작 '언맨드(Unmanned)'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지만, 'McDonald's Video Game'이나 'Every day the same dream'과 같은 기존의 게임과는 다소 다른 플레이 방식을 보여준다.
'언맨드’에서는 잠재적인 테러 위협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는 어느 무인기 조종사(drone pilot)의 일상이 분리된 화면으로 펼쳐진다. 분리된 프레임에는 그래픽 이미지와 텍스트가 각각 제시되며, 주어진 행위를 어떻게 수행했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선택했는가에 따라 배지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오른쪽 프레임에 위치한 캐릭터의 얼굴에 면도칼을 가져가 조심스럽게 면도를 하는 동시에 왼쪽 프레임에 뜨는 그의 내면적 질문에 대해서 선택을 해야 한다. 면도를 하는 행위에 집중하지 않으면 얼굴에 상처가 나는데, 그렇다고 텍스트를 대충 클릭해서 진행해 버리면 캐릭터는 충분히 생각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되고 그 장면은 보상 없이 종료된다. 자가용을 운전하거나, 무인기를 조종해서 정찰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상의 행위를 무리 없이 진행하되, 행위들 틈새로 끼어드는 대화나 생각의 단초들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플레잉의 요지이다. 특히 집으로 퇴근한 조종사가 아들과 FPS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는 게임 화면을 그대로 차용해 게임을 플레이 하는 행위도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강력한 몰입의 매체인 게임에서 게임의 프레임 바깥을 보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플레이 할 때는 거추장스러운 텍스트들을 대충 넘겨버리지만 다시 플레이 할 때는 이 게임의 유일한 보상인 배지를 받기 위해 텍스트를 유심히 읽어 내려가게 된다. 무의식적,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행위를 완수하면서도 우리는 반성과 성찰을 지속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생각을 깊이 이어갈 수 있을까를 게임의 미션으로서 고민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게임 스토리텔링을 효과적으로 구현해주는 기술들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그것은 주로 그래픽 영상을 강화해 나간다. 그와 더불어 게임 공간의 텍스트에 대한 실험들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012년에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았던 ‘투 더 문,’ ‘리틀 인페르노,’ ‘언맨드’는 비디오 게임의 공간 안에서 쓰이는 텍스트의 가능성을 탐구하기에 좋은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세 게임의 텍스트들은 게임 안에서 메타-게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시도들이 나오게 될까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