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방송 Let's Play

내가 워크숍 때 언급한 게임들을 한국의 유명한 게임 스트리머들이 다루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게임방송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제이슨 로러 Jason Rohrer, 로버트 양 Robert Yang, 몰레인더스트리아 Molleindustria, 니키 케이스 Nicky Case 등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의 게임을 게임방송에서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중 최고는 로버트 양의 게임을 하면서 줄곧 당황한 한 유명 스트리머가 결국엔 게임을 중간에 꺼버리고 무릎 꿇고 사과를 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팬심어린 마음으로 수줍게 말을 걸었던 사람의 게임이 변태병맛 게임 취급을 받는 것에 일단 실소했다. 표현 수위도 그렇고 맥락 없이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특히 젠더나 섹스를 이야기하는데 아주 많이 보수적인 한국의 분위기에 맞춰 채팅창에서 다 함께 야단법석을 떠는 바람에, 이거 게이 다룬 거 아니냐고 진심 정색한 사람들이 더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로버트 양은 꾸준히 게이 섹스 게임을 만들어왔는데, 1960년대 미국의 공중화장실부터 데이팅 앱까지 다양한 소재와 감시/통제의 문제를 연결한다. 그에게 게이 섹스 게임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마땅한) 자기표현의 자유를 (여전히) 획득하기 위한 실존의 문제이다.
제이슨 로러가 또 한 번 야심을 부린 최근작도 게임방송에서는 이상한 유머코드를 가진 서바이벌 게임 정도로 보였다. 제이슨 로러는 독창적인 게임플레이를 탐구하는 작가를 생각할 때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플래시 드라이브에 담긴 가상세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나 사막 한가운데 묻어버린 보드게임, 캐릭터가 최대 한 시간 생존하는 멀티플레이어 게임까지, 그는 인간 개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성을 뛰어넘는 게임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세계를 만드는 방식은 꾸준히 게릴라적이다. 게임방송은 그의 작업세계에 대한 맥락 없이 기존의 장르 법칙이나 매커닉을 기준으로 플레이하면서 판단했다. 물론 맥락이란 건 플레이어 입장에선 굳이 알 필요 없는 것이긴 하지만 알면 또 재미있을 수 있는 그런 정보들일 거다.

게임방송은 내가 사서 플레이할 것 같지 않은 게임들 - 귀신 나오는 공포게임(디텐션 Detention만 예외로, 장면 장면을 놓칠 수가 없어서 심장을 부여잡고 했다)이나 배틀로얄류의 카피캣 -을 보는 재미가 있다. 배틀그라운드와 같이 껍데기만 있는 세계(아무런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은, 아이템을 파밍하고 방어나 공격의 전술적 기능만 남은 공간)를 가진 게임은 직접 플레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지만(장르에 부합한 세팅이지만 내 취향은 아님), 대신에 스트리머가 만들어내는 드라마를 보는 건 재밌다.
최근엔 라이브 방송도 챙겨보게 되었는데, 며칠 전에 스트리머가 방송의 화면 끊김을 막기 위해 그래픽 세팅에서 그림자를 꺼버리고 서바이벌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때 하룬 파로키의 시리어스 게임즈 Serious Games IV: A Sun without Shadow의 그림자 없는 세계가 떠올랐다. 게임방송에서는 한 명이 플레이하는 것을 만여 명이 동시에 보기 위해서, 파로키의 영상에서는 퇴역군인의 트라우마 치료에는 예산이 적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생겨난 결과이다. 이 그림자 없는 세계들은 최대한 현실감 있게 몰입적인 세계를 구현한다는 원래 의도에서 벗어난다. 플레이어는 꼭 필요한 그래픽만 남긴 기능적인 세계 안에서 사건이나 감정을 환기하거나(트라우마 치료) 새롭게 만들어 넣는다(게임방송 상황극).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플레이어가 계속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어있는 세계를 채워 넣는 플레이어와 그것을 지켜보는 제삼자의 피드백이 함께 내용을 만들어간다. 혼자 게임을 세팅하고 플레이할 때와 다른 경험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방송이라는 형식이 미디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모든 미디어가 그래야 하듯 다양한 장르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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